
Esther
2023년 12월 9일
Why Reality Matters for Feminism
몇달 전, 우연히 Oxford Union 에서의 젠더 디베이트를 통해 알게된 Kathleen Stock. 그녀의 등장을 환영하지 않는 시끄러운 시위와, 토론의 진행을 중간에 멈추기까지 했던 혐오의 강도에, ‘도대체 뭐라고 하길래 이 정도의 혐오를 사나’ 궁금해져 그녀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었습니다. 바깥에서 간간히 들리는 다소 공격적인 소리와 움직임에도 크게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본인의 생각과 연구결과를 말하는 그녀에게서 소리의 크고 작음을 초월한 어떤 힘이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내용을 들어보니 타인을 괜히 화나게 하는 인물은 아닌 것 같아 그 모든 상황이 의아했습니다. 젠더 아이덴티티에 대한 우려섞인 비판과 트랜스젠더의 권리에 대한 논쟁 가운데 교수직을 내려놓는 상황까지 되었다 하니, 그녀의 아이디어가 그 정도로 위험하고 중대한 것인지 더 궁금해져 그녀의 책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책에서는 개인의 정체가 그 누구와도 관계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자기가 내재적으로 느끼는 대로 정의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가정하는 젠더 아이덴티티라는 개념이 현실에 비추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또 철학적으로 윤곽을 명확히 그릴 수 있는 개념인지를 질문합니다. 트랜스 여성을 여성으로 범주화했을 때 그것이 사회적, 의료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실질적으로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트랜스 사람들의 존재의 무게를 무효화시키거나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님이 꽤 명확했습니다. 시끄럽게 시위를 하던 분들도 그녀의 글을 끝까지 직접 읽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성을 내진 않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현대 사회의 특히 인문/사회과학 교육의 분위기와 흐름, 관심의 추세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볼 때, 많은 주목을 받는 담론들이 점점 정치화되고, 의견의 불일치가 토론이 아니라 위협과 협박의 원인이 되어가는 환경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경험상 낯설지 않았습니다. Judith Butler를 읽고 그녀의 아이디어에 의문을 제기하면 포용성과 관용이 없는, 시대에 뒤떨어진 학생이 되는 것인지를 고민했었던 날들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What constitutes gender identity?
What are the implications of affirming gender identity? How might policies based on self-declaration impact spaces traditionally shaped by sex or women’s rights?
How does she advocate for balancing the rights of transgender individuals with potential conflicts in societal contexts?
How can the concept of intersectionality be utilized?